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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을 피해 도망치던 소녀가 WFP 직원이 되기까지

Published on 2014/12월/19

도루 씨는 사람들을 도울 수만 있다면 매일 텐트에서 자도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 WFP/George Fominyen

카뎃 – 도루 글래디스 올리버 씨는 내전이 발발한 후 두 달만에 고향인 남수단으로 돌아왔습니다. 20살의 그녀는 현재 WFP에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국세 조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글래디스 씨의 이야기입니다. 

  밤은 주바에서 전쟁이 시작된 이후 내가 고향으로 돌아온    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총소리와폭발이 계속 들려왔습니다다음  아침나는  이웃들  명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어렸을 내전을 피해 우간다에서 자랐기 때문에 인생에서 총소리를 들어  적이 없었던 나는다시 우간다로 날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나는 가진 돈이 없었습니다정말 직업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때에 유엔세계식량계획(WFP) 남수단의 현장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나는 바로 지원했고국세조사원으로 일할  있게 되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지역을 찾아갈 나의 일은 식량 배급 전에 마을을 찾아가 사람들을 등록시키는것입니다또한 식량 배급 당시에 줄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대부분의 국세 조사원들이 어리기 때문에 가끔씩은 자신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않으면 억류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촌장들도 있습니다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침착해야 하며좋게도 다른 WFP 선배들의 도움을 받습니다하지만 어떨 때는 전쟁의 한가운데서 알지 못하는 장소에 있다는것이 무섭기도 합니다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한 편입니다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에티오피아의 국경 가까이에 있는 아코보 지역을 갔을 때였습니다 동료가 다음  있을 식량 배급  사용할 비닐봉지를 사러 시장에 갔는데갑자기 그가 걸어간 쪽으로  무리의 사람들이 뛰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들은 것은 총소리였습니다.

 

혼란이 퍼지는 가운데서 우리는 그를 찾을  없었습니다나는 눈물을 흘렸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그가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허나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살아남은 그를   있었습니다동료가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과 주바에서 처음으로 전쟁이 발발했을   어느 쪽이  최악이었는지는 아직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나는 남수단과 에티오피아 사이를 가르는 아코보 강을 건너다 뒤집힌 카누에도 타고 있었습니다우리는강의 건너편에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식량을 배급하러 가든 길이었습니다나를 포함한   명이 탑승해 있었고배가 뒤집혔을  나는 강둑으로 수영해 나올  있었습니다하지만 우리 동료   사람은 그렇게까지 수영을  하지 못해 물을 많이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느꼈을 공포와 우리들의 절망감은 말로 다할 없을 것입니다

 

허나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나는  일을 사랑합니다 일은 정말로  나라에 대해 알고 이해할  있게 주었습니다굶주리는 사람들침수된 습지에서 사는 사람들내전 때문에 농사조차 지을  없는 사람들이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나는 현장에 있을  훨씬   만족감을 느낍니다비록 텐트에서 자고우리가 도착한  2~3일이 넘어서야 식량이 도착해  전까지 과자로 연명할 수밖에 없지만,사람들을 도울  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바랍니다. 밖에는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