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센터

[에볼라] 에볼라에서 생존한 사람들의 이야기

Published on 2015/3월/04

WFP의 홍보 담당 임원인 Donaig Le Du씨는 라이베리아 카카타에서 에볼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세상에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면 저 여성분을 만나보세요” 한 직원이 말했습니다. 사람들 모두가 인터뷰를 위해 줄을 섰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시간 동안, 어떤 사람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어떤 사람들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문 앞의 어두운 복도 가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줄을 선 사람들 모두가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병을 이겨내고 지내고 있는지 알리고 싶어했습니다.

 
 
나는 병원의 청소부입니다. 나는 병원에서 제공하는 장갑이 없었기에 맨손으로 수건을 가지고 병원 벽을 닦곤 했는데 이 경로로 에볼라에 감염되었죠. 내가 에볼라 치료소에 실려갔을 때, 난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죽은 사람들을 천으로 싸고 있는 것을 본 것을 기억해요. 난 완전히 희망을 잃었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신이 어서 나를 데려가기를 바랐죠. 그러나 신은 그러지 않았어요. 난 살아있다는 것에 기쁩니다.

 

내 남동생은 아픈 고모를 확인하러 갔다가 감염이 되었어요. 우리는 에볼라가 뭔지도 몰랐죠. 그리고 나서 남동생은 병에 걸렸고 우리 집 모두를 감염시켰어요. 나의 어머니, 고모, 남편 그리고 내 두 동생들까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내 세명의 아이들, 어린 여동생들 그리고 조카와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난 중고 의류를 파는 일을 했는데 병에 걸린 이후 팔려고 내놓은 옷들은 감염을 막기 위해 뿌려진 표백제로 엉망이 되었지요. 나는 다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난 내 아이들의 유일한 희망이죠. 난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해요.

 

난 장의사입니다. 7월 25일 나는 시체를 영안실로 운반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 우리는 어떤 보호장비도 없었죠. 우린 그 사람이 에볼라로 죽었을 것이라곤 꿈에도 몰랐어요. 내가 병에 걸리고 나서야 당시 옮긴 환자가 에볼라로 죽은 것임을 알았죠. 내가 시름시름 앓을 때쯤 내 친구는 나를 에볼라 치료소로 데려갔어요. 난 매일 기도 했고 나의 목사님도 수화기 너머로 날 위해 기도해 주셨어요. 내가 퇴원한 이후 나는 다시 시체를 매장하는 팀과 함께 일을 시작했습니다. 난 2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묻었어요. 난 이 분야에선 전문가입니다. 이게 내 직업이에요.

 

나는 에볼라에 감염되기 전 미망인이었습니다. 이제 나의 어머니와 큰언니 모두 세상을 떠났어요. 내가 에볼라 치료소에서 돌아왔을 때, 나의 집주인은 나를 내쫓았고 내 집에서 훔칠 수 있는 모든 것을 훔쳤어요. 나는 지금 남겨진 내 가족들과 살고 있지만 이제 뭘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직도 매우 약해요.

 

내가 에볼라 치료소에서 퇴원했을 때, 내 이웃들은 모두 나를 무서워했어요. 지금 에볼라 캠페인 덕분에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졌죠. 그러나 재단사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아마 아직도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옷을 만든다는 자체를 꺼려하는 것 같아요.

 

딸의 두 삼촌이 죽었습니다. 딸의 여동생도 죽었어요. 임마누엘은 겨우 두 살이었습니다. 직원들이 내 아이를 에볼라 치료소로 데려갔을 때 나는 신께 매달렸어요. 사람들은 내 딸의 운명이 신의 손에 달렸다고 했지요. 딸아이가 퇴원하여 집에 돌아왔을 때, 모든 이웃들은 두려워했어요. 이웃들은 우리 집을 “에볼라의 집”이라고 불렀죠. 하지만 이제 우리 딸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어요. 나는 딸이 살아 돌아온 것에 감사합니다.

 

나는 실험실에서 일합니다. 7월의 어느 날, 나는 환자로부터 샘플들을 가져왔는데 당시 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어요. 1주일 뒤 나는 병에 걸렸고 결국 나는 에볼라 치료소로 수송되어 치료를 받았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아팠고 내 앞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집은 소독되었고 나는 그 때 모든 것을 잃어 지금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내가 아직도 병원에 있는 악몽을 꾸곤 해요.

 

7월에 시누이가 병에 걸렸어요. 내 오빠는 내게 와서 좀 도와달라고 했는데 사흘 뒤 시누이는 세상을 떴습니다. 그리고 나는 집에 돌아왔는데 남편이 아프기 시작했고 나도 몸이 안 좋아 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시장에서 쓰러졌고 사람들이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어요. 내 허리와 위장은 아직도 좋지 않습니다.

 

나는 위생작업 자원 봉사자예요. 7월, 나는 병이 위독한 친구의 가족 연락처를 알기 위해 친구 핸드폰을 찾았습니다. 며칠 뒤, 내 친구가 에볼라 양성판정을 받았어요. 나는 엄청나게 걱정이 됬죠. 나는 우리 집 매트리스를 집안 멀리 옮겼고 부인과 아이들에게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라고 말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족은 병에 걸리지 않았어요. 저는 신께서 나를 통해 가족의 생명을 구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