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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시리아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시리아
시리아에서는 쉼 없이 계속되는 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집도, 직업도 모두 잃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가족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알레뽀지역 출신인 아지즈씨의 가족은 시리아를 가로질러 다른 지역으로, 그 후에는 이라크로, 다시 시리아로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시리아, 까미쉴리(QAMISHLI)
 까미쉴리는 시리아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터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외국에 살고 있는 친인척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아지즈(Aziz)는 알레뽀 지역을 떠난 이후, 하사케의 까미쉴리 지역에서 직업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이곳에 남았습니다.

 “저는 알레뽀에서 두 형제들과 함께 큰 저택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옆 마을이 전쟁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도망칠 수 밖에 없었어요. 여기로 오면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지즈는 여기에 오기 전, 페인트공 이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마을에서 직업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아지즈의 가족은 이단 버려진 학교건물 안에 살림을 차리고 일자리를 찾아 다녔지만, 6개월 간 일이 들어온 것은 2건이 다였습니다. 세 아이들과 생계를 꾸리기에 턱도 없는 돈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가족과 함께 이라크로 떠났습니다.

 “우리 식구는 다섯 명입니다. 어쩔 수 없이 주위에서 돈을 좀 빌려서 가족들을 데리고 이라크로 갔어요. 이르빌은 물가가 정말 비쌌고, 두 달간을 매일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지만, 결국 저희는 까미쉴리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억장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었어요. 알레뽀에 있는 저희 집이 내전 중에 전부 파괴되었다는 것이죠.”아지즈씨가 그때의 비통한 심정을 되살립니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 고난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그는 까미쉴리 공공수목원 경비들이 사용하던 작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가 다른 집을 찾을 때까지 그곳을 사용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들은 아지즈의 가족을 위해 주방용품과 담요, 그리고 겨울을 내기 위한 난로까지 선뜻 기부했습니다.

“학교에 있는 제 방은 다른 가족에게 주어졌어요.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이웃 분들께서 많이 도와주셨죠. 하지만 그걸로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저는 빨리 직업을 구해야 합니다.” 아이즈가 말했습니다. 아지즈는 이라크에 갈 때 식량배급을 중단하고 간 이후로, 다시 WFP의 식량지원을 위한 등록을 했습니다.

 WFP는 전 세계의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근 알 하사케 지역으로 가는 도로가 매우 위험해 짐에 따라 WFP는 작년 12월, 항공기로 에르빌 에서 까미쉴리까지 식량을 공수했습니다. 이는 먹을 것이 궁핍한 62,000명 이상이 5달간 식량원조를 받을 수 있는 양입니다. 지금까지, 총 20대 중 16대의 비행기가 5만 명의 한달 치 식량을 배급했습니다.

 아지즈의 걱정은 그의 아내와 어린 아이들입니다. 살마(10). 가지(8). 그리고 세상에 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아마드 입니다. 큰 아이 둘은 지금까지 1년 넘게 학교를 가지 못했고, 아버지는 그들 중 누군가가 아프기라도 할까 봐 걱정입니다. 치료비를 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지즈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매우 낙심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지즈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저는 웃음을 잃고 싶지 않아요. 아마 이게 제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전부니까요.”

 

여러분은 시리아에 있는 수많은 아버지들에게 미소를 되찾아줄 수도, 아이들이 희망을 갖게 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