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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 바이러스]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이 되기까지

[에볼라 바이러스]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이 되기까지
과거 WFP의 수혜자였던 애드마 카마라 씨는 현재 에볼라 긴급 구호의 최전선인 시에라리온에서 식량을 배급하고 있습니다.

프리타운 – 시에라리온에서 온 애드마 카마라 씨는 그녀가 자라난 동쪽 프리타운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배급합니다. 애드마 씨는 에볼라로 인해 가족과 일, 삶을 전부 잃은 이들에게 쌀, 콩 등등으로 이루어진 필수품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는 두려움이 스스로의 돕고자 하는 열정을 좀먹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매일 새로운 공포에 맞서 싸운다는 것

 

“두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안전 조치를 따르고 있습니다.” 애드마 씨가 말했습니다. “매일손을 씻고, ‘아무도 만지지 않는다’ 방침을 지킵니다. 또한 격리된 지역에 식량을 배급할 때는 장갑과 함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옷을 입습니다.”

 

8월까지만 해도 애드마 씨는 케네마의 남동쪽 도시에서 WFP를 위해 일했습니다. 하지만 에볼라가 급속도로 봄발리, 토이나두구, 코노 그리고 톤콜리 지역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고향이기도 한 프리타운 동쪽의 마케니 지역으로 다시 배정받았습니다. 에볼라 피해 사례들이 속출하면서 아직까지도 국내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또한 수입산, 국내산 식품들의 가격이천정부지로 뛰어오르면서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매일같이 애드마 씨는 지역보건부, 동료 단체들과 함께 필요한 식량이나 식량 배급에 대해 논의합니다. 모든 식량은 현재 격리된 지역에 거주하는 가족들과 치료소에 있는 에볼라 환자들에게 지원됩니다. 

 

(사진: WFP) 

 

감사와 자랑스러움

 

애드마 씨는 WFP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1970년 말, 그녀는 학교에서 WFP의 급식을 배급 받았던 학생 중 하나였습니다. 심지어 현재 마케니에서 WFP 사무소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 바로 애드마 씨가 과거에 다니던 초등학교입니다.

 

“바로 이곳이 제가 벌거르 요리를 받기 위해 줄 서있던 곳입니다.” 애드마 씨가 말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우리가 얼마나 점심 시간을 기다렸는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종이 울리자마자 저마다 접시를 들고 음식을 받기 위해 뛰쳐나갔었죠. 급식 중에는 고기도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이곳에서 일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학교가 직장이 된 셈이니까요!”

 

시에라리온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애드마 씨도 에볼라가 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실감했습니다. 그녀의가장 친한 친구의 언니도 치료소에서 에볼라 환자들을 돕다가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사망했습니다.

 

 “저는 남겨진 가족들과 아이들을 위해 울었습니다.” 애드마 씨는 그 때의 기억을 회상했습니다. “그녀는 가족의기둥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남은 가족들은 격리되었고 도움이 필요했지만 그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아주 적었습니다.”

 

에볼라 사태는 시에라리온에서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WHO에 따르면 칠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염되었고그 중 천오백 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해 WFP는 현재 867,0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7,100톤이 넘는 식량을 배급했습니다. 이러한 WFP의 수혜자들은 치료소에 있는 사람들, 격리된 가족들과 갈 곳을 잃은 에볼라 환자들을 포함하는 숫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