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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에이즈)도 예술가의 꿈을 꺾을 수는 없다

HIV(에이즈)도 예술가의 꿈을 꺾을 수는 없다
국가 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유망했던 예술가 ‘로저스 마쿤다’씨는 2009년,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AIDS)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난 뒤, WFP의 보건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건강을 회복하며 밝은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 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유망했던 예술가 ‘로저스 마쿤다’씨는 2009년, 자신이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AIDS)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이전과 다를 것 없이 일하며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형제가 세상을 떠나면서 7명의 아이들을 떠맡게 되었고 이전과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지금 마쿤다씨는 WFP의 보건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건강을 회복했고, 밝은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라레- 로저스 마쿤다씨는 캔버스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인상을 찌푸린 채 조용히 콧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길가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아프리카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높은 아파트들을 그리고 있는 그는 하라레의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마레(Mbare)지역에서 삽니다.

요즘 마쿤다씨는 자신이 1980년대에 졸업한 예술학교에서 일을 합니다. 웃고 떠들며 서로의 작품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하던 학생들은 20년간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어온 마쿤다씨의 조언을 소중히 새겨 듣습니다. 

 “저는 제 작품들을 짐바브웨 국립미술관에서 팔았어요. 그리고 제 그림을 산 사람들은 케냐나 영국으로 가지고 갔지요.” 마쿤다씨는 말합니다. “1987년도에는 국가 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어요.”

참 행복한 나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4년 전, 마쿤다씨는 HIV(후천성 면역결핍증후군, 에이즈)양성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짐바브웨의 HIV바이러스 보유자 120만 명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작년 9월에는 그의 형제가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쿤다씨는 병들고 돈도 없었지만 형제의 가족을 책임지기로 했고, 7명의 자식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걱정이 태산 같았어요. 식비나 학비는 더 들게 되었지만 그 누구도 돈을 벌어올 사람은 없었죠.”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마쿤다씨는 끼니를 거르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계속 해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돈을 벌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어요.” 마쿤다씨가 말했습니다. 

 

건강을 되찾기까지

10월, 마쿤다씨는 WFP의 건강과 영양 프로그램에 가입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6개월 동안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영양이 강화된 콘소야블렌드를 배급받았습니다. 올해 WFP는 마쿤다씨를 비롯하여 짐바브웨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18만 명과 그 가족들에게 콩과 옥수수, 기름 등의 식량을 배급하고 있습니다.

같은 WFP의 보건프로그램이지만 하라레의 불라와요, 궤루 같은 도시에서는 슈퍼마켓에서 직접 식량을 살 수 있는 쿠폰을 배급합니다. 또 추가로 지급되는 5달러로는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살 수 있습니다. 매달 약 8000장의 식량쿠폰이 캐나다와 스위스의 후원덕분에 무사히 배급되고 있습니다.

 “지난 달에 저는 그 5달러로 우유와 감자를 샀어요. 정말 오랜만에 마시는 우유였어요.”그가 말했습니다. “WFP의 식량으로 저는 건강을 회복하고 있어요.”

짐바브웨의 HIV 바이러스 보유자는 15%입니다. 하지만 이 비율은 2006년 이후 3% 줄었습니다. 

최근에는 작품활동의 일환으로 직물 염색도 하고 있습니다. 이 직물들은 치마나 셔츠, 자켓으로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벽에 거는 작품도 됩니다. 마쿤다씨는 요즘 옆집 마당에서 윗부분을 잘라낸 코카콜라 캔에 물감을 담아 작업을 합니다. 마쿤다씨가 염색한 옷감의 화려한 색에 많은 소비자들이 매혹되곤 합니다. 

하지만 마쿤다씨에게는 더 큰 꿈이 있습니다. 옷감들을 다른 남부 아프리카로 수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페인트를 더 살 여유가 된다면,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마쿤다씨와 가족들, 그리고 HIV로 고생하고 있는 분들께 희망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