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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식량 위기 속에서 생명을 살리는 WFP

이라크의 식량 위기 속에서 생명을 살리는 WFP
북부 이라크에서 폭력 사태가 터진 이후, 내전과 불안한 정치적 상황은 약 120만 명의 사람들을 그들의 고향으로부터 내쫓았습니다. WFP는 그 가운데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현재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서 일하고 계시는 어데어 애클리 씨의 시점에서 작성된 것입니다. 

 

 

수많은 이라크의 국민들이 군대의 발 아래서 고통 받고 있습니다. 특히 식량도, 물도, 집도 없이 혹독한 산에서 9일 동안 끔찍한 상황을 견디며 고립되어 있어야 했던 예지디 사람들이 맞이한 곤경은 세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비록 이미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자르 산에서 탈출하기는 했지만, 짐작할 수 없는 숫자의 사망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저의 유엔세계식량계획(WFP) 동료들은 다후크의 북부 주에서부터 도망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 왔습니다. WFP는 지역 NGO인 바르자니 자선 단체와 함께 야외 취사장을 세우고 백만 명이 넘는 난민들에게 매일 따스한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에 상관없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필수적인 조달은 7월에 있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왕실로부터 큰 공헌이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WFP의 이라크 긴급 구호 현장에서 항상 든든한 조달자로서 협력해 왔습니다.

 

다후크의 남쪽에 위치한 샤리야 마을은 난민들을 위한 센터로 탈바꿈했습니다. 신자르 산에서 폭력 사태가 터진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저는 샤리야를 방문했습니다. 저와 제 일행은 자신들의 상황에 항의하기 위해 교통을 방해하려 애쓰던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무리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WFP가 그 곳에서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는 가족들은 아무런 취사 기구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주어지는 따스한 식사는 그들에게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샤리아에서 저는 신자르에서 온 목수이자 대장장이인 28살의 사미를 만났습니다. 불거진 폭력 사태는 그로 하여금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을 뒤로 하고 피신하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현재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혹은 어떻게 되었는지조차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미의 얼굴에서는 분노와 절망이 선명하게 엿보였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교육에도 역시 큰 피해를 끼쳤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아홉이라고 밝힌 약대생은, 그가 원했던 것은 오직 평화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야 그가 학교로 돌아가서 학위를 완수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많은 이라크 선생님들이 이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으며, 천 개가 넘는 학교들은 난민들을 위한 피난처나 기숙사로 변했습니다. 이는 초등학생들에게 끝나지 않는 여름방학을 선사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WFP는 다후크의 아이들에게 특화된 종류의 지원을 고안해 냈습니다. 6개월에서 36개월 정도 된 아이들의 영양소를 신장시킬 수 있는 A29 에너지 바가 그것입니다. 저로부터 이 에너지 바들을 받았던 엄마들은 이러한 추가적인 지원에 아주 기뻐했습니다. 현재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저는 곧 이러한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