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헝거챌린지- ‘한국’의 참여가 중요한 이유
제로헝거 챌린지 블로그 원문 : http://blog.zerohungerchallenge.org/why-south-korea-is-a-great-ally-in-ending-world-hunger/
제로헝거챌린지- ‘한국’의 참여가 중요한 이유
한국은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인한 고통을 그 어느 나라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의 여파와 한국전쟁으로 인해 당시 거의 모든 국민이 굶주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제로헝거챌린지 참여가 더욱 중요한 이유입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이 발표한 제로헝거챌린지는 우리 세대에 기아를 퇴치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에서 탄생한 세계적인 캠페인입니다. 세계 70여 개 국 이상에서 굶주림을 해소하고 있는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제로헝거챌린지의 주요기관입니다. 며칠 전, WFP사무총장 어서린 커즌은 제로헝거챌린지 출범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했습니다.
커즌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한국의 예시가 바로 우리 세대에 기아를 끝낼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30년 전에 한국은 우리의 가장 큰 수혜국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WFP의 공여국으로 도움이 필요한 다른 국가를 후원합니다. 한국의 경험은 세상에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저는 종종 한국 전쟁 때 유엔민간기구협력단체를 지휘했던 미 육군 소령 찰리스 아놀드의 이야기를 꺼내곤 합니다. 수많은 한국아이들이 난민신세가 되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식량 배급 줄에 서 있던 그 시절, 수많은 아이들과 그 가족들은 급히 피난길에 올라 아무것도 챙겨오지 못해 빈털터리였습니다. 전란 속, 먹을 것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습니다. [1972년, 한국. WFP 식량 배급 당시의 모습.] 아놀드 소령은 부대가 배급하는 우유와 쌀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식량을 배급 받은 지 몇 주가 채 지나지 않아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전쟁은 계속되었고, 아이들과 가족들은 지속적으로 구호식량을 보급받았습니다. 당시 유니세프는 수 백만 명의 아이들에게 우유를 배급했습니다.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위세대가 겪었던 일입니다. 그러한 구호활동이 없었다면 지금의 남한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컵의 우유, 한 줌의 쌀이 모여 일구어 낸 결과입니다.전쟁이 끝난 후에도 국가 재건을 위한 후원이 계속되었습니다. 평화를 위한 식량 계획(제 2차 세계 대전 후의 미국의 대외 식량 원조 계획: U.S. Food for Peace program)은 수백만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먹을 급식을 후원해 주었습니다. 국제구호단체 ‘CARE’도 이 때의 구호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1972년, 한국. WFP 식량배급 당시의 모습.]한국은 1960년대에 유엔세계식량계획이 조직되자 마자 지원이 들어간 주요 수혜국 중 하나였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를 재건하는 데는 아주 긴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은 WFP의 원조국 입니다. 이들은 수십 년 전의 한국처럼 도움이 간절한 국가에게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몇몇 국가들은 전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국은 국가의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의 빛입니다. 세계 어디에서든 내전과 가난, 굶주림이 계속되어선 안됩니다. [FAO제공. 당시 한국아이들의 모습. 한국은 WFP를 포함한 많은 단체들에게 원조를 받고 있었습니다.]평화로운 국가는 식량안보를 담보로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세계 평화를 위해 제로헝거 챌린지가 앞장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훌륭하게 자라서 국가를 일으킬 인재들을 영양실조 상태로 방치해 두었다면 이들은 기초교육을 받을 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필수 영양소 부족이 장기화되어 너무나 약해졌을 것입니다. 굶주림에 고통 받느라 교육의 발전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을 보십시오. 참담한 상황을 역전시키는 데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 만으로 훨씬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