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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아공 난민 인터뷰: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삶

중아공 난민 인터뷰: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삶
파티마투 자라씨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극으로 치닫는 유혈사태를 피해 카메룬으로 피난을 떠난 100,000명 중 한 명입니다. 현재 세 아이와 함께 매달 WFP로부터 식량을 배급 받고 있지만 난민이 된 후 파티마투씨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파티마투씨와 아이들은 지난 2월부터 카메룬 동부 국경지역인 요카도마의 작은 난민캠프에서 기거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수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요카도마에 있는 친척들이 서로서로 다른 가족들을 돕고 있습니다. 삶의 어떤 점들이 바뀌었냐는 질문에 파티마투씨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이전의 삶과 비교하면 가장 크게 바뀐 점은 무엇인가요?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는 것과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가장 커요. 예전에 저는 시장에서 장사를 했어요. 토마토나 양파, 기름 등을 팔면서 정말 바쁘게 살았어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사는데 지장은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게 작은 가게를 꾸리고 싶어요. 하지만 피난을 나오면서 모아둔 돈을 전부 써버려서 당분간은 힘들 거에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다른 것은 어떤 것들이 바뀌었나요?

두 딸이 더 이상 학교를 못 간다는 거요. 걸어서 가기에는 너무 멀거든요. 딸들을 학교까지 태워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림도 없죠. 학교는 정말 중요한 거에요. 특히 어린 여자아이들에게는 더더욱 필요하죠. 또 다른 점은 잠잘 때 에요. 이전 집에서는 저와 아이들을 포함해서 6명이 모두 침실에서 잤어요. 여기서는 21명이 한 방에 누워 자죠. 

이 곳에서 모두 안 좋은 점 밖에는 없나요?

그렇진 않아요. 이 곳에서는 적어도 더 이상 총격이나 폭력에 벌벌 떨지 않아도 되요. 그리고 매일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있죠. 이것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곳에 와서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발벗고 도와주는 좋은 사람들을 사귀게 되었어요.

카메룬에는 언제 오셨어요?

한 5개월쯤 전에요. 내전이 발발했을 때, 저희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도망쳐 나왔어요. 총격은 가까워오고 있었고, 실제로 해를 입는 사람들도 많았죠. 너무 위험했어요. 최대한 빨리 도망 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거금을 주고 차를 얻어 탔어요.

도망쳐 나올 때 무엇을 챙겨 나오셨나요?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옷 한 벌 밖에 가져오지 못했어요. 아이들것도 다 한 벌씩이요. 덕분에 저희는 이 곳에서도 옷을 갈아입을 수 있어요. 다른 건 가져오지 못했어요. 도망쳐 나오느라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했죠.

두고 온 것 중에 특별히 후회되는 것이 있나요?

이번에 새로 산 하얀색 그릇 세트가 계속 생각나요. 20명이 식사하고도 남을 만큼 많이 샀어요. 장식이 너무 예뻤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네요.

중아공에 돌아 갈 예정이신가요?

뭣 때문에 돌아가죠? 폭력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간다고 해도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내전이 멈추고 상황이 안정된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 봐야죠. 다른 가족들의 결정에 따라 달렸어요. 저는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할 거에요. 가족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거에요.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중아공의 무슬림, 크리스쳔 모두가 함께 살았는데도 아무 문제도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죠.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모든 것을 다 뒤로하고 도망 나와 이렇게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 가족뿐만의 일이 아니에요. 이곳에 와있는 우리 모두는 처음부터 다시 삶을 시작해야 하죠. 전쟁은 이처럼 너무나 비참해요. 모든 사람들은 서로 함께 평화롭게 살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