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 배로 열 시간, 마침내 폭력에서 도망친 나이지리아 난민들, 위로와 도움을 받다.
2월 8일 오후 - WFP 팀은 바가 솔라 마을로부터 86명의 나이지리아 피난민들을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차드강에 위치한 바가 솔라 마을은 나이지리아 국경과 인접해있습니다. 피난민들은 배를 타고 모국의 점점 심해지는 폭력사태로부터 도망친 것입니다. 그들의 여정은 고향에서 떠나기 전 바가 솔라에서 도움과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한 2주를 시작으로 차디안 해안에 위치한 캉가람 마을에서 차드강을 가로질렀던 10시간까지 험난했습니다. 피난민들이 바가 솔라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얼굴은 긴 여정에 지쳐있었습니다.
사진:WFP/Miguel Tomas
무사히 도착한 피난민들은 곧 다른 여정을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이번 목적지는 트럭으로 바가 솔라에서 15km 떨어진 난민캠프인 다에살렘입니다. 하지만 그곳으로 떠나기 전에 난민들은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볕 아래에서도 식량배급을 받고자 모여들었습니다.
사진:WFP/Miguel Tomas
피난민들은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입니다.
사진:WFP/Miguel Tomas
사진 속 사람들 중 가운데는 올해 65세인 아마두 하루나씨와 그의 어린 아들 아나스와 요우네스입니다. 아마두씨는 그의 가족이 나이지리아 바가 도롬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1월 초, 평화는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아마두씨의 마을이 무장한 군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한달 뒤, 그의 집으로부터 몇 키로 떨어진 곳에서 아마두는 그의 아내 자이나라던가 그의 다른 아이들인 6살 하시아와 9살 지다로부터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난 내 가족들이 살아있는지조차 모르겠어요”. 아마두씨가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가족들을 고향에 두고 왔고, 가족들 소식을 알지 못합니다.
사진:WFP/Miguel Tomas
WFP팀은 아마두의 아이들과 다른 난민들에게 고영양 비스켓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긴장된 분위기에서도, 아나스는 비스켓을 씹을 때만큼은 밝은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이 미소는 WFP팀이 강가에서 아나스와 그 아버지를 만난 이후로 처음 본 미소였습니다.
사진:WFP/Miguel Tomas
근처 다른 난민인 하기라씨는 도움이 급했습니다. 하기라씨는 폭력사태로부터 도망칠 때 한쪽 팔을 잃었고, 10시간 고된 여정 후에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WFP/Miguel Tomas
수많은 피난민들 가운데 가장 가족머릿수가 많았던 대가족은 둘로 팀을 나누었습니다. 한 팀은 안에서 소금과 콩들을 모으고 있었고, 다른 팀은 바깥에서 수수와 기름을 받고 있었습니다. 새로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는 난민들 사이에서 완전한 한 가족을 보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사진:WFP/Miguel Tomas
피난민들은 강가에서 카누와 비슷한 배를 타고 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어떤 주민들은 지역과 지역 사이의 피난민들을 태워 나르는 일을 자처했습니다. 긴 풀들 탓에, 배를 항구까지 운전하는 일은 꽤 어려웠습니다. 1월 4일부터 2월 13일 까지, 14대의 배들이 각각 약 80명의 사람들을 태웠고 총 3,200명에 이르는 피난민들이 무사히 바가 솔라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사진:WFP/Miguel Tomas
참고 : 국제개발부서(DFID) 도움 아래, WFP는 아마두씨와 그의 아들들처럼 급히 도움이 필요한 난민들에게 나눠줄 2.5톤의 고영양 비스킷을 조달 받을 수 있었습니다.
WFP는 다르에스살람 난민 캠프에 대피한 3천 여명 이상의 난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3월, WFP는 쿠폰 형식의 프로그램을 통해 8천명의 난민들과 2천여 명의 취약계층에 도움을 줄 예정입니다. 2015 말에는 약 4만 명을 도와줄 예정입니다. 이 4만 명은 3만 명의 난민들과 고향을 잃은 차드 국민, 지역사회의 취약계층을 포함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WFP는 약 미화 1040만 달러가 더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