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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음식보다 평화를 더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

[남수단] 음식보다 평화를 더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
남수단에서 내전이 발발한 지 일 년이 흘렀습니다. 전쟁은 그 동안 사람들의 생활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WFP는 내전의 피해자 중 하나인 두 어머니를 만나, 그들이 겪은 일들과 소망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카겟 – 저는 일곱 명의 어머니인 난케인 콩이라고 합니다. 올해는 정말 힘든 해였습니다. 전쟁으로 시작되었고 벤티우 지역에서 시작된 내전에 사람들은 이곳으로 안전을 찾아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도 전쟁은 있었습니다. 그저 힘들었고,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남아 있거나 도망치거나, 혹은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몇 개의 작물을 심었지만 그것마저도 내리는 비에 의해 쓸려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식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이미 보셨을 것입니다. 제가 수확할 수 있었던 작물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현재 이 수련만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말린 수련이 담긴 용기를 꺼내 보이며) 이것들만 먹고 살고 있으며, 이를 수확하려면 강으로 가야 합니다. 말린 후에는 죽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최근에 식량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WFP)이 이곳에 왔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수련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것 외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평화를 원할 뿐입니다. 물론 식량도 필요합니다. 허나 평화가 찾아와 다시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을 것입니다.

 

(사진: WFP) 

 

마비오르, 종레이 주 – 저는 레베카 난웃이라고 합니다. 내전이 발발했을 때 저는 마비오르와 가까운 피오마완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다섯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구욜라 주로 도망쳤습니다. 그곳에는전쟁을 피해 도망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는 것은 정말 힘들었고, 특히 어린 아이들이 고생을 많이했습니다. 우리는 원래 아이들에게 신선한 우유를 줄 수 있었지만 가축을 잃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8개월 후, 저는 가장 어린 두 명의 아이들과 함께 구욜라 주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마비오르와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지만, 문제는 그곳에도 매우 적은 양의 식량만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그것조차도 열악한 재배 환경에 시들어 버렸습니다. 식량 배급이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듣고 저는 매우 행복했습니다. 또한 어린아이들에게 필수적인 죽(Super Cereal Plus)을 배급한다는 소식에 더욱 기뻤습니다. 이러한 식량 배급에는 정말 감사하지만, 허공에서 떨어지는 식량 (WFP 식량 상공 투하) 에는 아이들을 위한 우유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재 내전에 연관된 이들이 평화에 대해 논하는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평화가 오기를 바랍니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가축들을 돌보고 스스로의 식량을 기르며, 아이들을 키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