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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보석” 알레포를 떠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하나인 알레포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로 지정되었으며 한때는 유명한 관광지였습니다. 또한 시리아의 산업자본도시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알레포는 제일 위험한 도시 중 하나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움 주하르는 알레포에서 네 딸을 둔 어머니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자랐고 결혼했으며, 네 딸은 공공임대주택에서 태어났습니다. 남편은 오래된 재래시장에서 섬유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주하르 씨는 그녀의 삶이 완벽했다고 말했습니다.

 

(Photo: © WFP/Hani Al Homsh)

 

집을 찾기 위한 시리아에서의 여정

알레포에서 내전이 발발했을 때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한때 견고했던 도시는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그 혼란 속에서 그녀는 남편을 잃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안정적인 삶조차 놓치고 말았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봐 두려웠고, 이 끔찍한 전쟁에서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었습니다.”

 

결국 주하르 씨는 알레포를 떠났고, 몇몇 옷가지와 약간의 돈만 가지고 다마스쿠스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12시간 동안 버스를 타면서 목격한 홈스 (시리아 서부지역의 도시), 다마스쿠스 주변의 시골 그리고 수도 그 자체의 풍경은 그 결심을 뒤바꾸기에 충분했습니다. 따라서 주하르 씨는 다마스쿠스 행을 포기하고 북서쪽에 위치한 스와이다로 향했습니다.

 

“어떻게 살아갈지는 막막했지만, 나는 우리가 스와이다에서는 안전할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불행하게도, 스와이다에서 생활비가 훨씬 더 많이 드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그녀에게 가까운 곳에 위치한 크나와트에 가서 살 것을 권유했습니다. 주하르 씨는 돌로 만든 낡은 집을 빌렸습니다. 그것이 텐트에서 사는 것이나 학교에서 공간을 빌리는 것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그녀에게 매트리스나 담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주하르 씨는 그녀의 어린 딸들을 먹이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Photo: © WFP/Hani Al Homsh)

 

새로운 시작을 위한 WFP 식량 배급

그 때 주하르 씨는 시리아-아랍 국제적십자연맹에 등록하여 WFP의 식량 배급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원은 그녀의 가족이 필요로 하는 식량의 6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주하르 씨가 가까운 과수원에서 가져오는 야생 허브와 이웃들로부터 받는 약간의 과일과 야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하르 씨는 그녀의 가장 큰 두 딸들을 학교에 보낼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어머니가 일을 하고 있을 때 두 동생들을 돌보곤 합니다. 그것만이 주하르 씨가 월세를 내고 집을 따스하게 하기 위한 난방비를 대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제 그녀의 여동생의 가족들까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주하르 씨가 책임져야 할 사람은 아홉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녀는 모두를 먹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주하르 씨는 “사람들이 우리를 잊었을지라도 신만은 잊지 않으신다” 라고 믿고 있습니다.

 

거의 4년 동안 계속된 시리아 내전은 건물들과 이웃들, 그리고 주요 도시의 큰 부분들을 무너뜨리고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언젠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까지 무너뜨리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희망은 어두운 밤에 더욱 밝게 타오르고 차가운 집에 온기를 더합니다.

 

WFP와 지역 파트너들은 시리아의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움 주하르 씨와 같은 가족들을 돕기 위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