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을 무릅쓰고 즐거움을 배달합니다. (남수단 직원 인터뷰)
Allan Buiinge (알란)은 WFP의 Pibor 마을에 있는 WFP 배급 센터에 고무 장화를 신고 성큼성큼 걸어옵니다.
알란은 진흙 속에서 버티느라 고생하고 있습니다. 내란을 피해 집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모두 맞춰주기는 굉장히 힘듭니다. 우간다에서 온 WFP의 물류 담당관인 알란은 우기가 심해지기 전까지 더 빨리 일을 처리하고 싶어합니다.
“우기가 시작되면서 홍수가 나고 진흙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배급은 계속해야 합니다.” 알란이 말합니다. 동시에 운반인들이 식용유가 담긴 식량 상자들을 창고에서 옮겨 배급을 기다리는 어머니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기 기다리는 여성들 중에는 여기까지 오려고 며칠을 걸어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족들은 굶주리며 기다리고 있죠. 상황이 어떻던지간에 우리는 배급을 멈출 수 없습니다.” 알란이 덧붙였습니다.
알란은 2003년부터 WFP에서 일했습니다. Pibor 마을에서의 일은 비록 고되지만 손에 꼽을 만큼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미소로보답받다.
알란이 20대일 시절에 수단에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알란은 우간다에서 남수단까지 식량을 호송하는 임무를 맡았었습니다.
“그 때에는 전화 네트워크 조차 없었습니다. 남수단 내에서는 HF 라디오를 사용해서 화물의 위치나 상태를 보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베이스와 가족들에게 라디오 메시지를 보내서 안부를 전하곤 했었습니다.”
알란은 무장세력에 의해서 여러 번이나 억류되었습니다. 2004년에는 술 취한 병사가 우간다에서 Warrap주로 운송되고 있는 6대의 WFP 트럭을 검문소에서 제지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병사는 제가 이런 큰 호송대를 이끌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했습니다. 모든 운전수에게서 서류를 빼앗고 가시나무 덤불로 만들어진 우리에 가두더군요. 다른 병사들은 볶은 땅콩을 우리에게 나누어줬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염소를 잡아서 바비큐까지 함께 했어요. 결국 WFP에서 지휘관과 이야기를 끝낸 후에야 그 병사가 취해있었다는 걸 확인하고 우리를 풀어주게 되었습니다.” 알란이 회상합니다.
이런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알란은 계속해서 일합니다.
“어떤 지역에 수송이 시작되는 날은 기쁨이 넘쳐납니다! 아이들과 여성들은 거의 울부짖다시피하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릅니다. 제가 가장 크게 동기부여를 받는 부분입니다. 어떤 것도 생명을 구하는 일에 참여했다는 기분보단 더 좋지 않습니다.” 콩과 소금을 한 여성에게 나누어주며 말합니다.
“인도주의 기관에서 일한다는 것은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자기 자신의 편한 생활을 내던지고, 가족과 떨어져서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배급과 함께 미소를 지을 때 가장 큰 만족감과 보상감을 느낍니다. ”
과학선생님에서국제구호원으로
나무 그늘 밑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Francis Sarpong-Kumankuma(프란시스)가 Pibor 카운티의 작은 마을을 위한 배급에 대해 하는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프란시스는 WFP 현장 직원들에게 고등학교 교사 시절 경험을 되살려 브리핑을 했습니다. 오늘 프란시스는 Bor에 있는 WFP의 보조사무소장으로써의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가나 인으로써, 아프리카에서 가장 복잡한 프로젝트들을 수행했습니다.
“저는 2년간 고등학교 과학 교사로 처음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가나에서 공중 보건 영양사로 직업을 바꿨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가나에서 가장 열악한 주에 있는 지역 보건부서의 중견 관리자로써, 프란시스는 WFP 직원들과 함께 취약 계층의 여성과 아이들에게 식량 지원을 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WFP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012년에는 남수단으로 옮겨 마반 카운티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Unity 주로 옮겨 Murle와 Lou Nuer 지역간의 분쟁과, 종레이 주에서 정부군과 반군에 의한 무력 피해의 회복을 도우려고 했습니다.
고통을덜어주기위하여
프란시스는 WFP가 구호단체 직원들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외진 곳에 지원을 하는 것은 특별한 도전이라고 합니다. Dorein에서 있었던 특별히 추웠던 날의 배급을 회상하면서 말했습니다.
“한밤중에 한 무리의 하이에나가 캠프 가까이서 끔찍하게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깨어있었지만 하이에나들을 위협할 어떠한 무기 조차 없었습니다. 계속 숨죽여 있었더니 30분쯤 후에 하이에나들은 사라졌고, 우리는 다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수호 천사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프란시스는 이런 위험한 경험 또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 중의 하나라고 받아들입니다.
“국제 구호원의 마음 저 밑에는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상황이 더 나아질 때까지 일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인도주의적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