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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부로부터 로힝야 난민에게로: 쌀 한 톨에 담긴 소중한 선물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이제 눈부신 발전의 상징이자,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의 주요 공여국이 되었습니다.
, Kun Li, Farhana Shahnaz, and Yanghae Won
 
한수웅(85) 씨는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의 배고픔을 기억하고 있다. Photo: WFP/ Yanghae Won
한수웅(85) 씨는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의 배고픔을 기억하고 있다. Photo: WFP/ Yanghae Won

85세 한수웅 씨의 인생은 늘 '쌀'과 함께였습니다.

3월, 아직 땅이 얼어붙은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농부 한수웅 씨는 벼씨를 물에 담아 싹을 틔웁니다. 모내기와 병충해 방제를 마치고, 들판이 노랗고 푸르게 물드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봅니다. 그리고 10월, 추수철이 되면, 수확한 벼를 도정공장에 넘기고 마침내 1년 농사의 결실을 손에 쥡니다.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대한민국 경기도 화성에서 쌀농사를 짓는 농부 한 씨는 대대로 이어온 벼농사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A forklift loads Republic of Korea rice onto a vessel at Gunsan Port. Photo: WFP/Yanghae Won
대한민국 군산항에서 지게차가 대한민국 쌀을 선박에 싣고 있다. 대한민국은 올해 WFP를 통해 17개국에 쌀 15만 톤을 지원한다. 사진: WFP/Yanghae Won

한 씨가 수확에 자부심을 갖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가 재배한 쌀이 매년 WFP의 식량 원조 프로그램으로 지원되는 수만 톤의 한국산 쌀 중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배고픔만큼 사람이 견디기 힘든 고통은 없습니다." 6·25 전쟁 이후, 어린 시절 한 씨에게 WFP의 식량 지원은 생명줄과도 같았습니다.

"그때 밀가루와 수수 가루, 우유와 분유 등 구호식량을 받기 위해 먼 길을 걸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배고픔이 어떤 것인지 정말 잘 압니다."

A woman in a black headscarf sits in front of a table to collect food assistance in Cox's Bazar. Photo: WFP/Rawful Alam
로힝야 난민 레일라가 방글라데시의 콕스 바자 난민 캠프에서 WFP 식량 교환권을 수령하고 있다. 사진: WFP/Rawful Alam

4,000km 가까이 떨어져 있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 레일라 역시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섯 아이의 어머니인 레일라는 2017년, 미얀마 라카인 주에서 총격으로 남편을 잃은 뒤 15일을 내리 걸은 끝에 국경을 넘어 피난을 왔습니다. 

"작년에 우리는 한국에서 온 쌀을 받았어요. 아주 맛있었습니다. 렌틸콩과 양배추를 곁들여 먹으니 정말 맛있었어요." 레일라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와주는 나라로

Port workers in background and white bags of Korean rice with the country's flag stamped on them arriving at Bangladesh's Chittagong Port. Photo: WFP/Rawful Alam
한국 쌀이 방글라데시 치타공 항에 도착해 콕앤아포로 향하고 있다;한국이 식량 원조 수혜국에서 주요 공여국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사진: WFP/Rawful Alam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고, WFP의 주요 수원국이었습니다. 1964년부터 1984년까지, WFP는 20년 동안 한국에서 영양 지원, 식수 위생 및 위생 개선, 홍수 방지, 도로 건설 등 약 20여 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발전을 도왔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WFP의 주요 공여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매년 수억 달러 규모의 식량 원조를 지원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한씨와 같은 농부들이 재배한 쌀도 포함됩니다. 

올해 대한민국은 WFP에 역대 최대 규모인 15만 톤의 쌀을 17개국에 지원했습니다. 이는 2018년 처음 쌀 공여를 시작했을 당시보다 세 배 늘어난 수치입니다.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이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받았던 도움을 돌려줄 줄 아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김신재 농림축산식품부 글로벌농업개발추진팀 과장이 이와 같이 한국 정부의 뜻을 밝혔습니다.

Small labeled glass dishes of rice grains of various colours. Photo: WFP/Yanghae Won
한국 쌀은 수출 전 철저한 도정 및 품질 검사 과정을 거친다. 전문가들은 해외 원조용 쌀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엄격한 기준으로 검정 과정을 진행한다. 사진: WFP/Yanghae Won

올해 방글라데시는 한국 정부에서 새롭게 시작한 영양강화 쌀 지원의 첫 수혜국이 되었습니다. “이 지원을 통해 한국은 단순한 식량 지원을 넘어 영양 지원까지 아우르며, 글로벌 영양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과장은 이처럼 설명했습니다. 

이 쌀은 방글라데시로 향해, 레일라와 같은 100만 명이 넘는 로힝야 난민을 지원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한국 쌀은 세계에서 가장 배고픈 사람들에게 생명줄입니다.” 이현지 WFP 한국사무소장은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쌀이 2025년 800만 명 이상의 취약 계층에게 전달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매년 꾸준하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이어지는 이 중요한 지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한국 정부의 쌀 지원은 식량과 함께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품질과 안전

A man in a blue hardhat and yellow WFP jacket stands in front of a cargo vessel at a South Korean port. Photo: WFP/Yanghae Won
자스팔 오베로이 WFP 해상운송 담당관이 한국 군산항에서 화물을 감독하고 있다. 그는 화물의 안전과 한국산 쌀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진: WFP/Yanghae Won

한 씨와 같은 농부들이 재배한 쌀은 정부와의 계약을 통해 수매되어, 전국 주요 생산지의 대형 창고로 옮겨져 도정 과정을 거친 뒤 냉장 보관됩니다. 이렇게 보관된 쌀은 엄격한 품질 기준을 충족해야만 다른 나라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콕스바자르로 향하는 쌀은 서해안의 군산항으로 운송되어, WFP 전용 선박을 통해 방글라데시로 실려갑니다. 한국 정부는 쌀의 운송 및 가공 비용 전액을 지원하며, 정부의 품질 관리 기관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WFP를 통해 여러 차례의 검정 절차를 거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화물의 안전에 끝까지 집중하는 것입니다.” 자스팔 오베로이 WFP 해상운송 담당관이 강조했습니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만, 우리가 다루는 쌀이 결국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닿는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의미 있게 만듭니다.” 

An aerial view of Cox's Bazar, one of the world's largest refugee camps. Photo: WFP/Mehedi Rahman
세계 최대 로힝야 난민 캠프인 콕스 바자르에 있는 난민 캠프의 항공 조감도. 사진: WFP/Mehedi Rahman

약 2주간의 항해 끝에 쌀은 방글라데시 최대 항구인 치타공 항에 도착합니다. 이후 추가 품질 검사를 거친 후, 콕스바자르의 창고로 옮겨지고, 로힝야 난민들에게 배분됩니다. 이곳의 난민들은 인도적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로힝야 난민들은 과밀한 주거 환경, 보건 위험, 제한된 교육 기회 및 생계 활동 등 복합적인 어려움에 놓여 있습니다.” 모하마드 로키불 알람 WFP 방글라데시의 프로그램 담당관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쌀 한 톨의 소중함

A woman in a black headscarf and robe sifts rice through her hands. Photo: WFP
레일라는 WFP로부터 제공받은 바우처로 구매한 쌀을 확인하고 있다. WFP의 지원은 그녀의 가족에게 생명줄과도 같다. Photo: WFP

“모든 쌀알에는 여러분의 땀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WFP와 난민캠프의 가족들은 이 소중한 쌀을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받고 있습니다.” 음식이 매우 귀중한 이곳에서 알람 담당관은 이 한 씨와 같은 한국의 농부들에게 감사를 전했습니다. 

레일라의 가족은 대나무로 지은 작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매달 WFP로부터 지원받는 12달러의 식비 바우처로 구할 수 있는 쌀, 채소, 고기 위주로 식사를 해결합니다. 하지만 최근 전 세계적인 자금난으로 인해 지원이 줄어들 전망입니다. 

“저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특히 제 큰아들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더 많은 음식을 필요로 합니다.” 레일라가 호소했습니다. 

운영 자금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난민캠프에서의 필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2024년 초 이후, 13만 명이 넘는 로힝야 난민이 분쟁을 피해 콕스바자르 난민촌에 새로 유입되었습니다.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그들이 가까운 시일 내 고향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A Korean farmer examines his rice field. Photo: WFP/Yanhae Won
쌀전업농협회를 설립한 한수웅 씨는 자신의 수확물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 기쁘다고 이야기했다. 사진: WFP/Yanghae Won

"로힝야족은 수십 년 동안 무국적 상태였습니다." WFP의 알람이 말했습니다. "난민 캠프의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쌀과 같은 지원이 더욱 절실합니다."

멀리서 전해진 쌀을 손에 꼭 쥔 레일라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한국 국민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분들의 안녕을 빕니다."

경기도의 자택에서 이 소식을 들은 한수웅 씨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지은 쌀이 바다 건너 이웃들에게 힘이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참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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