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게 모자라고, 아예 없을 때도 있어요." 줄어드는 식량 지원에 더 배고파지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은 모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봅니다. 흰색 SUV에 탄 WFP 직원들이 카불 외곽에 있는 이 비공식 정착촌을 드나드는 모습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요.
WFP 직원들이 이곳을 오가는 이유는 음식을 주기 위해서도, 다른 도움을 주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WFP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식량 지원을 완전히 줄인 이후 이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기록하는 것뿐입니다.
이곳에는 위생시설도, 수돗물도 없습니다. 지난 20년간 헬만드(Helmand), 발크(Balkh), 우루즈간(Uruzgan), 칸다하르(Kandahar), 라그만(Laghman) 지역의 분쟁과 기아를 피해 아프가니스탄 수도 주변의 50개 임시 마을에 5만 명이 흩어져 살아갑니다.
그리고 WFP는 이들을 포함한 1000만 명에게 지원하던 음식의 양을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음 식사가 어디서 올지 알 수 없는 낭떠러지 끝에 서 있습니다. 분쟁으로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많은 여성은 당국의 제한으로 생존 활동을 하기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이들이 쓰레기를 모아 내다 팔려고 큰 비닐봉지를 끌고 갑니다. 이렇게 일하면 하루에 미화 0.6달러(우리 돈 약 800원)를 받는데 가족 예닐곱 명을 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8월의 무더운 토요일 낮, 거리를 채우는 건 뛰어노는 아이들과 먼지입니다. 반짝이는 보라색의 shalwar kameez를 입은 장난기 많은 소녀가 자기 엄마를 소개해 준다며 초대합니다.
소녀는 현관문을 대신하는 파란색 커튼 너머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이곳의 진흙집들에는 문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모두 텐트나 천막이었으니, 그나마 진흙집인 지금이 조금 더 튼튼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아프가니스탄 주택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작은 안뜰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초록색으로 덮인 정원이 아닌, 생명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공간입니다. 갈라진 점토 바닥 한쪽에 파티마(Fatima)와 타미나(Tahmeena)가 카불의 강한 햇빛을 피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홀몸으로 아이를 돌보면서 돈을 벌지 못한다면 대체 육아는 어떻게 하는 걸까요.
"방법은 있어요." 파티마가 입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한밤중에만 가능해요. (이웃들의 집을) 백 곳 정도 두드리면, 열 곳은 저를 도와줘요."
부엌을 보여달라고 부탁해 봤습니다. 마당 구석의 좁은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파티마는 나무 땔깜 두 개를 보여줍니다. 진흙으로 빚은 오븐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요리한 게 언제였을까. 두 사람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합니다. 식량 지원이 없으면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요.
"그냥 덜 먹어요. 아예 안 먹을 때도 있고요." 타미나의 말입니다.
오래된 빵과 이웃이 나눠주는 나물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음식들입니다. 집을 나서려다가 문득, 이 집과 이 정착촌에서 음식을 본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현장에서 마주치는 수혜자들에게 나중에 자녀가 크면 어떤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지 물어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물어볼 수 없습니다.
한 어르신이 말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자긍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낮에 구걸하는 사람은 보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대낮에도 손을 내밉니다. 우리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뜻이죠."
그가 덧붙입니다. "개들도 이곳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오래된 분쟁, 무너진 경제,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 위기로 국민 1/3이 넘는 1500만 명이 매일 배고픔을 참고 잠에 듭니다.
WFP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벼랑 끝에서 구출하려면 미화 10억 달러가 급히 필요합니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Peyvand Khorsandi contributed to this re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