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프리카에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 쌀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매일 쌀을 먹는다고 합니다. 쌀은 조리가 쉬울 뿐만 아니라 풍부한 섬유질, 미네랄,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쌀은 매우 중요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한국인들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주식이지요.
대한민국은 1950년대 한국전쟁과 1963년 대규모 홍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전 세계의 취약계층을 돕는 WFP 최대 공여국 중 하나입니다. 2024년에는 WFP를 통한 연간 쌀 공여 규모를 기존의 두 배인 10만 톤으로 확대해 11개국에 쌀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쌀이 동아프리카의 식량 불안정 해소와 영양 공급에 이바지하는 세 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1. 우간다 학생들의 든든한 급식 메뉴
첫 번째로, 우간다 북동부 카라모자(Karamoja) 지역에 살고 있는 15살 소녀 완인제 멜레스(Wanyinze Meles)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학교 급식이 없는 다른 학교에 다녔던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는 학생들의 성적이 매우 낮았어요.”라고 완인제는 말합니다.
완인제와 부모님은 완인제가 마음껏 학업의 꿈을 펼치길 원했고, 완인제는 WFP의 지원으로 매일 학교 급식이 제공되는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에서는 대한민국이 공여한 쌀이 급식에 사용됩니다. 우간다에서는 3,000톤의 한국 쌀이 약 332,000명의 아동들과 난민, 망명 신청자,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학교급식은 부모님들이 자녀들, 특히 여자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급식에 들어 있는 풍부한 영양소는 아이들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실제로 학교 급식은 학교 출석률을 높이고 중퇴율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카라모자 지역 학생들이 건강한 식사를 누리는 것은 우간다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완인제는 학교 급식 덕분에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게 되어, 성적이 향상되었다고 전합니다. “예전에는 100점 만점에 30점을 받았지만, 지금은 100점 만점에 70점을 받고 있어요.”라고 완인제는 말합니다.
수수가 주식인 카라모자에서 쌀은 찾아보기 힘든 재료였습니다. 하지만 학교 급식 덕에 쌀은 완인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새로운 음식을 발견하는 것이 즐거워요." 라고 완인제는 말합니다.
2. 케냐 이주 난민들의 따뜻한 한 끼
파르히야 압둘라히 하지(Farhiya Abdullahi Haji) 씨는 쌀을 활용해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냅니다. 양파, 토마토를 넣어 밥을 짓거나 향신료, 고기와 함께 동아프리카의 요리인 필라우를 만들지요. 카우피 잎과 콩을 곁들여 먹기도 합니다. 어떻게 조리하든, 파르히야의 네 아이들은 쌀이 들어간 음식을 무척 좋아합니다.
파르히야 씨는 소말리아에서 온 난민으로, 케냐 북서부 카쿠마(Kakuma) 난민 캠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분쟁과 기후 변화로 케냐 내 난민 인구가 60%나 급증하면서 식량은 더욱 부족해졌습니다. 최근에는 난민들의 수요가 WFP 가용 자원의 규모를 앞지르며 배급량을 크게 줄여야 했습니다.
“집에 음식이 없으면 집이 아니고, 기쁨도 없지요."라고 파르히야 씨는 말합니다.
대한민국은 올해 쌀 공여량을 기존의 두 배로 늘려 케냐에 21,000톤(1420만 달러 상당)의 쌀을 지원했습니다. 이 공여로 WFP는 케냐 동부 다다브(Dadaab) 난민 캠프와 카쿠마 난민 캠프에 사는 50만 명 이상의 난민과 학생들에게 식량 지원을 이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파르히야 씨는 남은 음식을 이웃과 나누곤 했습니다. 배급량이 줄어들었던 시기에 이러한 나눔은 어려워졌지만, 대한민국의 지원으로 따뜻한 나눔이 다시금 가능해졌습니다.
파르히야 씨는 “아이들이 쌀을 정말 좋아해요. 아이들이 자루에 담긴 쌀을 보면 '위대하신 하나님, 우리에겐 식량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죠.”라고 전합니다.
3. 에티오피아 이주 난민들의 버팀목
에티오피아 북부 아파르(Afar) 지역에는 38세 여성 아이샤 알리 모하메드(Aisha Ali Mohamed) 씨가 남편과 네 명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인접 국가인 에리트레아에서 온 난민으로, 아이사이타(Aysaita) 마을 외곽의 난민 정착촌에 수년간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 정착촌에는 콘크리트 건물과 철골 구조의 주택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는데, 약 3만 명의 난민들이 이곳에서 살아갑니다.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띄운 채 아이들과 식사하며, 아이샤 씨는 자신의 꿈을 떠올립니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아이샤 씨가 조리사로 자원봉사를 하는 학교에서는 WFP를 통해 지원받은 한국 쌀이 급식에 사용됩니다. 한국 쌀은 WFP 학교 급식을 통해서도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있지요.
아이샤 씨의 가족은 어려움 가운데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현지인들과 난민들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고 그녀는 전합니다.
아이샤 씨는 “난민촌에서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평화와 지역 사회의 따뜻한 환영 덕분”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