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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 우리의 WFP | #2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야기 - 김지영 WFP 협력관

"언젠가는 WFP나 다른 유엔기구들이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 Yanghae Won

머나먼 타국에서 나의 고향과 연결됨을 느끼는 순간은 어떨까요?

해외에서 근무하며 같은 한국인 동료를 만나는 순간이나 이제는 세계적인 위상을 가진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그리고 나의 고향 땅에서 물을 먹고 자란 쌀이 바다를 건너 도착하는 순간….

60년 전 WFP의 도움을 받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부강한 나라가 되어 세계 곳곳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는 만큼, 한국 바깥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한국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은 제법 많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방글라데시에서 백만 명 로힝야 난민들과 그들을 돕고자 하는 국여국들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김지영 WFP 협력관을 소개하려 합니다. 김지영 협력관은 방글라데시 곳곳에 전해진 대한민국 정부의 손길을 느낄 때마다 감사함을 느끼며, 자신이 하는 일에 동기부여를 받는다고 전했는데요, 매일 밤낮없이 여러 대사관, 외교 기관과 소통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을 이끌어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느끼는 행복과 고뇌, 그리고 신념까지, 함께 들어볼까요?

나의 하루, 우리의 WFP 2편

Q. 지영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WFP 방글라데시 사무소에서 파트너십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지영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2023년 4월부터 근무를 시작해 이제 2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저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UNV(유엔자원봉사단)로 UNFPA 차드 사무소에서 1년간 근무를 하다가, 이후 같은 나라에 위치한 WFP로 이동해 현재까지 파트너십 분야에서 6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Q.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처음 방글라데시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는 운영 자금이 부족해 로힝야 난민들에게 제공되는 식량 지원이 축소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저는 협력관으로서 큰 책임감과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충분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백만 명의 난민들이 굶주리게 될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로힝야 난민캠프에 방문했을 때에는,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상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갈 곳도 없습니다. 로힝야 난민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며, 방글라데시에서는 캠프 안에서만 머물 수 있고, 경제 활동을 할 권리도 없어 오직 인도적 지원에만 의존해 생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금 지원은 계속 줄어들어 너무나도 막막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Q. 지금 계신 곳에서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제 하루 일과는 매우 다양합니다. 매일 다른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죠!

저는 주방글라데시 대사관 및 기타 외교 기관과 정기적으로 소통하며, 양자 및 다자 공여국 회의를 준비합니다. 또한 방글라데시 현지 직원과 외국인 직원들로 구성된 팀을 이끌며 펀딩 제안서를 작성하고, 공여자분들의 현장 방문을 위한 준비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업무의 특성상 사무소 내 여러 부서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며, 조율과 소통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직 내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효과적으로 협력하며, 인도적 지원 활동이 원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여하고 있습니다.

Q. 하루 중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제가 가장 큰 보람과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입니다. 지금까지 저희 파트너십 팀에서는 서울대학교 학생 인턴 두 분과 외교부 지원 UNV 한 분이 함께 근무해 주셨는데,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능숙해지고 자신감을 갖게 되는 모습을 보며, 팀장이자 선배로서 매우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세 분 모두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업무를 수행해 주셨고, 덕분에 한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조직 내에 남길 수 있었습니다.

 

Q.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2024년, 대한민국이 WFP 방글라데시 사무소를 통해 로힝야 난민 백만 명을 위해 15,000톤의 원조 쌀을 처음으로 공여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농림축산식품부 과장님과 팀원들께서 직접 방글라데시를 방문해 쌀 전달식에 참여하셨는데요, 저는 그 방문을 위한 준비를 담당했으며, 전달식 현장에서 MC 역할도 맡았습니다. 열심히 준비해 맞이한 그날의 현장은 정말 뜻깊고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특별했던 점은 그 원조 쌀이 제가 어릴 적 살았던 전라북도 군산항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습니다. 고향과 연결된 그 순간은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이 일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전달식이 열린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는 애국가가 울려 퍼졌고, 태극기가 새겨진 쌀포대들이 배경에 놓인 가운데 과장님께서 한국을 대표해 연설하셨습니다. 과거에 원조를 받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나라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에게 큰 자부심과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한국 쌀
한국산 쌀이 방글라데시에 도착해 WFP 물류 창고에 쌓여있는 모습. ⓒWFP/Saikat Majumder

Q. WFP에서 근무하며 만난 사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방글라데시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사관의 요청으로 KOICA 사업 모니터링을 위해 외곽 지역인 쿠리그람(Kurigram)에서 진행된 미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의 첫 현장 방문이자, 한국의 지원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출발 전부터 매우 설렜던 기억이 납니다.

쿠리그람은 홍수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KOICA는 2018년부터 6년간 이 지역에서 기후 대응 관련 사업을 지원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여성 수혜자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KOICA의 창업 자금 지원을 통해 작은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현재는 소 두세 마리와 오리, 닭을 키우며 안정적인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느껴졌던 자부심과 감사의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Q. 일이 너무 벅차거나 힘들게 느껴질 때는 언제인가요? 그럴 땐 어떻게 이겨내시나요?

WFP 방글라데시 사무소는 다른 사무소에 비해 업무량이 많은 편이라, 하루에 10시간, 11시간씩 일하는 날도 적지 않습니다. 또 미국 워싱턴 사무소 등 시차가 큰 지역과 연락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밤에 근무하는 일도 빈번하죠. 때때로 과로로 인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담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백만 명에 달하는 로힝야 난민들이 WFP의 식량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에 집중하게 됩니다.

또한 방글라데시는 이전에 근무했던 말리나 차드와는 달리 다양한 카페와 레스토랑, 스파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좋습니다. 저는 주말에는 반드시 휴식을 취하려고 노력하며,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거나 마사지를 받으며 피로를 풀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런 작은 일상이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다음 주를 더 힘차게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동료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는 김지영 협력관의 모습.

Q. 해외에서 한국인으로 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차드나 말리처럼 한국인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근무할 때는 종종 '차이니즈'라고 불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방글라데시에서는 길거리에서 '코리안'으로 불리는 경우가 있어 처음에는 조금 놀라기도 했어요. 동료들이 BTS나 한국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한국문화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체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외교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동시에 WFP를 통한 인도적 지원을 진행하면서, 2024년에는 WFP 방글라데시 사무소에서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Top 5 공여국에 포함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무소 내 회의에서도 '코리아'라는 단어가 더 자주 언급되기 시작했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지원 덕분에 난민들이 쌀, 식용유, 소금만 섭취하던 상황에서 더 다양한 식량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국가들이 ODA 지원을 축소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은 오히려 지원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는 국제사회에서도 점차 주목 받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한국인으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정체성을 넘어, 한국이라는 나라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함께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한국에서 WFP와 인도주의 활동에 대해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요?

최근 매스컴에서는 유엔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종종 보도되고는 하지만, WFP 방글라데시 사무소에서는 백만 명에 달하는 로힝야 난민을 위한 식량 지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 유엔기구들이 한 건물로 통합 이전하거나 스태프 인원수를 줄여 운영비를 절감하고, 하이브리드 차량 도입, 환율 전략 등을 활용해 비용 절약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과거에는 기부금 1달러당 약 72센트가 난민들에게 직접 전달되었다면, 현재는 82센트가 식량 지원으로 직접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 효율화를 넘어, 실제 수혜자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

또한 로힝야 난민 사태처럼 한때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이 줄어든 인도주의 위기들이 많습니다. 로힝야 사태는 처음 발생한 2017년에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뉴스에서 잘 다뤄지지 않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들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관심과 지원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인도주의 활동의 실제 현장과 영향력, 그리고 지속적인 지원의 중요성에 대해 더 많이 알려지고, 관심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지금까지 일해본 결과, WFP는 어떤 기관인가요?

저에게 WFP는 왠지 모르게 가족 같은 느낌을 줍니다. 아마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함께 일하며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힘든 순간에 서로를 위로하며 정을 쌓아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특히 2012년 차드에서의 쿠데타나 작년 방글라데시에서의 대규모 시위 같은 상황에서는 모두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고, 통행금지로 인해 한동안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전화 통화를 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는 했습니다. 이런 경험들 덕분에 동료들이 정말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처음 WFP 차드 사무소 면접을 볼 때, 사무소 분위기에 대해 여쭤보니 소장님께서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지금은 WFP에서 6년째 일하다 보니 그 말씀에 정말 공감하고 있습니다.

수혜자 가정 방문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에서 수혜자 가정에 방문한 김지영 WFP 협력관.

Q. 이 일을 통해 본인이 바라는 세상의 모습은 어떤가요?

협력관으로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언젠가는 WFP나 다른 유엔기구들이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직도 전쟁이나 기아로 고통받는 난민과 국내 실향민들이 존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WFP가 필요 없을 정도로 모두가 배고픔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쿠리그람 지역의 수혜자
방글라데시 쿠리그람 지역에 사는 버섯 농부 사제다가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다. ⓒWFP/Samantha Reinders

 

인도적 지원의 현장에는 다양한 직책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수혜자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프로그램의 운영을 직접 담당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 프로그램의 운영이 가능할 수 있도록 든든한 다리 역할을 하는 이들도 있지요. 김지영 WFP 협력관처럼 다양한 외교 기관,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며 인도적 지원을 뒷받침해줄 후원자들과의 관계를 쌓는 분들이 있기에, 오늘도 WFP는 더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있습니다.

마침내 배고픔 없는 세상이 와 WFP와 같은 인도적 지원 기관이 필요 없어지는 그날까지, 자신이 맡은 의무와 책임을 다할 전 세계 각지의 인도주의 구호 활동가들을 응원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카드뉴스로 보기: https://www.instagram.com/p/DNhSXe_SjPW/?img_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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